뉴스레터

[2020년 7월 ME Newsletter] ME Alumni

관리자 2020.07.15

KAIST ME뉴스레터 2020년 7월호부터 매월 동문 인터뷰가 새롭게 게재됩니다.
첫번째 인터뷰는 카이스트 1호 박사이자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38년 재직하셨던 양동열 명예교수님(현,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을 모시고 진행해보았습니다.
Covid-19 사태의 엄중함을 고려하여 아쉽지만 ZOOM을 통한 비대면 온라인 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1. KAIST에서 배출된 1호 박사시고, 기계공학과에서 가장 유명하신 동문 중 한 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모든 동문께서 양동열 명예교수님을 잘 아시겠지만, 1회 졸업생 및 1호 박사로써 직접 자기소개 및 초창기 카이스트에 대한 회고를 부탁드립니다.
71년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학부생으로 재학 당시, 과기부 국장님께서 새로 생기게 되는 한국과학원(KAIS)에 대해 홍보 차 설명회를 오셔서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학부 시절 정치적인 문제들과 소요사태로 인해 휴교가 잦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 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73년에 입학하였습니다. 건물조차 완공이 되지 않아 실제 강의 시작은 73년 9월 1일부로 하였고 2년 간 재학 후 75년 8월에 석사과정 졸업을 했습니다. 당시 교수 별 박사과정 TO가 1명이었는데, 지도 교수님(이중홍 교수님)께서 지망을 권유하셔서 2년 간 연구를 진행하고 1년 간 학과에 봉사활동을 하며 논문을 보완한 후 78년 여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당시 산학제이신 양창주 박사님과 같이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는데, 성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글자의 초성이 제가 더 빨라서 운 좋게 1호 박사가 되었습니다. 박사 졸업생이 2명뿐이라, 8월 20일경 원장실에 모여 박사학위증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회 박사 학위증 원본은 원에서 보관하고 있고, 저는 사본만 갖고 있습니다.
석사과정 때는 KIST에서 연구를 하였지만, 박사과정 때는 실험 장비가 없어서 큰 장비는 수입하고 다른 모든 설비를 직접 제작하거나 설치하며 실험을 했었는데, 당시 1-2회 입학생들은 고생은 했지만 그런 경험들이 이후의 연구에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미국에서 AID차관으로 국내에서는 쉽게 살 수 없는 핵심장비들을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학원초기입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험뿐만 아니라 수치 해석도 KIST전산센터에서 키펀칭 카드로 입력을 하고 매우 느린 과정을 통해서만 수행할 수 있었고, 상당히 고생을 하며 학위과정을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명성이 높던 ADD에서 제 연구를 알고 계셨던 실장님께서 졸업 후 자리를 제안해 주셔서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학교의 권유로 남게 되어 졸업한지 10일 만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초임 때 재학생들이 교수가 아닌 형님으로 부르는 등 어중간한 위치로 재직하던 중, 독일 훔볼트 재단의 초청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독일 Stuttgart공대로 포닥을 갔습니다. 4개월 간 독일어를 배우고 이후 1년 간 연구를 했는데, 당시 독일에서도 더 연장을 원했지만 학과에 강의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귀국하여 81년 9월 고체역학과 소성역학 등의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2. KAIS, 독일, ADD 등 교수님과 인연이 닿은 모든 곳에서 남아 달라고 요청을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요?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박사과정 중에 제가 항상 무엇을 하자고 제안하는 편이고, 행정적인 지원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실험실 일들에 나서서 하다 보니, 지도교수님께서 좋게 보셨으며, 교수님께서 회사 사장으로 부임하시며 자리가 비는 등 운도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도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테크니션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독일어로 된 피카소라는 두꺼운 3차원 plotting 소프트웨어 매뉴얼을 영문으로 요약 번역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유하고, 대부분의 연구 발표가 2차원 그래프가 사용되던 시절 3차원 그래프를 써서 혁신적인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hydrofilm extrusion이라는 분야에 대한 논문도 쓰고 독일 특허도 냈습니다. 당시 Stuttgart공대 소성가공연구소 소장이면서 포닥초청교수 이셨던 Lange교수님이 아주 좋게 봐주셔서, 생산분야 최고의 학술단체인 CIRP가입 때 독일인 대신 저를 추천하시기도 하는 등 제 커리어 내내 이끌어주셔서 항상 감사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머문 1년 반 동안 10년의 계획을 생각해 두었기에 귀국 후 많은 일들이 순조롭게 풀렸고, 1호 박사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선구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ADD에서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일을 추진하는 인재를 원했기에 자기추진력이 있다고 본 저에게 학위취득 전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고 생각됩니다.
돌이켜 보면, 남이 시켜서 한 일은 별로 없고 항상 제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계획해서 했습니다. 80년대 기계학회가 동역학, 고체역학, 열역학, 유체역학 등 4대 역학 위주의 분과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의 다양한 분야로 재구성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저였고, 정밀공학회 활동에서도 그랬던 것 같고 현재 재직하는 광주과기원에 와서도 발전을 위해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카이스트 25주년기념물인 ‘까리용’도 제작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지역사회와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오픈카이스트 행사도 처음 제안했습니다. 오리연못 옆의 Faculty club도 스스로 나서서 ㈜골프존의 김영찬회장을 찾아가 설득하여 기존시설을 확장하여 짓도록 한 것은 했던 것 중에 보람 있는 일들 중에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홍창선 총장님 재임 시절 리더십프로그램도 학생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제가 처음 출범시켜 첫 4년간 셋업을 하였습니다. 기계공학동 리모델링 전 주차장 자리에 있던 장미화단도 주변환경 개선을 위해 제가 제안했던 것입니다. 1회 졸업생이라 그런지 몰라도 카이스트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습니다.

3. 수많은 연구업적과 각종 수상에 수많은 박사를 배출하신 교수님께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어떤 것이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요?
교수는 학생을 양성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주업이라 생각합니다. 학생 양성에 관해서 말씀 드리면, 카이스트는 프로젝트를 통해 시스템을 이해하고 기획하고 마무리하는 전체적인 과정에 대해 경험하며 경쟁력 있는 공학자를 키워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프로젝트와 논문이 별개로 진행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저는 지도학생들에게 논문과 프로젝트를 가급적 연계하여 훈련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박사를 61명 배출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까지 43명이 교수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졸업생 중에 서울과기대 김종호 총장도 있고 회사 사장도 몇 명 있습니다. 생산기술연구원장을 최초로 2번 연임한 나경환 원장도 제 석사과정 출신입니다. 또 다른 제자인 이낙규 박사가 최근에 같은 연구원 원장에 선임되었습니다. 교육자로써 졸업생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연구에 대해 말씀 드리면, 처음 소성가공을 연구한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는 더 이상 논문을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Rodney Hill이라고 25세에 박사학위를 하고 28세에 캠브리지대 교수가 된 유명한 학자가 있는데, 소성학의 큰 기틀을 세운 천재학자입니다. 이미 Hill교수의 연구에서 파생된 논문들이 수없이 많은데 어떤 창조적인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야든 본인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면, 모든 분야가 첨단기술, 첨단학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나 사회적 시류를 따르는 일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싶었습니다. 소성분야에서 선도적으로 세계적으로 리드하는 일을 은퇴 시점까지 하는 것이 연구실 목표였고, 몇 개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리딩하는 위치에 섰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커리어를 통해 제 연구의 50퍼센트는 본래 하던 분야를 유지하여 그 분야의 선도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나머지 50퍼센트를 사회가 필요한 분야로 변신을 하고자 했고, 그 중 대표적인 연구가 3D 프린팅입니다. 소성과 경쟁관계에 설 수 있는 분야가 3D 프린팅이라고 생각되어, 차라리 직접 그 분야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1990년대 국내에서는 그 단어를 모르던 시절에 처음으로 3D 프린팅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하지 않는 아주 큰 3D 프린팅을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스케일 3D 프린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큰 스케일 3D 프린팅으로 박사들을 배출했고, 이후 나노 3D프린팅 연구를 은퇴할 때까지 하며 의료 쪽에 적용하는 노력도 하고 나노 모빌리티에 대한 주제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나노스케일에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연구는 화학이나 물리 분야보다는 기계공학에서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에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10-20년을 바라보고 연구주제의 영역을 찾는 것이 카이스트 교수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38년 간 재직하면서 박사과정 때 했던 분야는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하는 분야는 세계적 경쟁력을 염두에 두고 영역을 확보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항상 마음에 두었습니다. 소성역학과 3D프린팅 분야는 여러 측면에서 연관이 되어 상호간 도움이 되었고, 젊은 시절 생각해둔 전략이 은퇴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새로운 도전과제로,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산수화보다는 꽃을 주로 그리자고 생각하고 작년 4월부터 매진하고 있습니다. 장미를 그려서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4. KAIST 개교 5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시면서, KAIST와 KAIST 기계공학과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숙고를 거치셨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KAIST기계공학과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젊을 때부터 항상 향후 10년간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워왔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무엇을 할지 최소 2-3년을 고민하고 셋업하여 출발하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남들이 안 하지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경쟁하면 세계적인 선도그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카이스트 교수들은 그런 것을 표방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첫째, 교육 측면에 대해 할 일이 많을 텐데, 그 중 하나로 Peer-instruction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마주르 교수가 주창한 것인데,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제 강의에서 30분 간 강의를 하고 10분 간 짝을 지어 서로 아는 것을 확인하는 형태로 도입해 보았는데, 뒤의 10분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육분야의 혁신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융합기술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계분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융합기술에 대한 창의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나노 3D프린팅을 연구할 때 화학, 물리 전공자와 일을 같이 하였는데, 서로에게는 어렵지 않은 요소기술들을 엮어서 새로운 연구를 창출하면서 모든 참여자에게 Win-Win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계공학과도 내부의 Cooperation보다는,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Creative Collaboration을 하고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그에 필요한 훈련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계공학을 기반으로 전자, 물리, 화학, 생물 등 다른 분야를 융합하는 연구에서 기계공학의 포텐셜이 크다고 판단합니다.특히, 기계공학 전공자는 시스템을 했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종합적으로 엮는데 아주 유리합니다. 기계공학 전공자가 여러 분야를 융합하는 연구를 이끌 수 있는 핵심요소 중 하나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라고 봅니다. 최근에 읽은 Science지의 논문에서 독일 Karlsruhe대학의 젊은 기계공학 전공자가 소재, 화학, 생물, 전자 분야의 전공자들을 모아서 개발한 유리 3D프린팅 연구가 있는데, 이 또한 시스템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분야만 가지고 혁신을 하기가 쉽지 않고 여러 분야가 연계하는 장을 기계공학자가 만들면 획기적인 기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계공학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각 분야의 과거의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동역학 전공이 아니지만, Robot이 해야 할 일을 상상해보면 새롭게 응용할 수 있는 Robot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부총장일 때 아이디어 팩토리를 처음 만들었는데, 아이디어를 가지고 함께 일 할 수 있도록 모이는 장소를 제공한 것입니다. 현재 기계공학관 1층의 비슷한 형태의 오픈랩이 생겼던데, 전공에 상관없이 아이디어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기계공학 분야의 사람이 기술융합분야에서 시스템적으로 앞장서야 하는 미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교수님께서도 위기가 있었을 텐데, 어떤 일이 가장 위기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위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우그룹 故김우중 전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에 위기를 위험 속의 기회 (opportunity in crisis)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단어를 2개 만들었어요. 난기(難機: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가 있다)와 난기(亂機: 어지러움 속에서도 기회가 있다) 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 두가지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어렵고 어지러운 상황이지만, 이 속에서도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기계분야 연구의 어려움 중 하나는 학교에서 시스템적인 구현과 구축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983년에 교수가 된지 5년도 되지 않았을 때, 완전 자동화된 CNC형 환상압연기(Ring rolling machine)를 구현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학교의 인력과 인프라만을 통해서 구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4억 원(현재가치 수십억 원 상당)의 지원을 받은 상태에서, 이것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 속에서, 전략적인 고민을 했습니다.
우선, 이 기술이나 일부 핵심기술을 제품화해서 앞으로 벤처기업으로 성공할 사람이 없을지 물색을 해서, 오늘날 전자저울을 만드는 주식회사 CAS의 김동진 사장을 찾았고, 그 회사를 학교 외부에 두고 사람들이 모이도록 했습니다. 당시에 훌륭한 연구진도 물론 큰 역할을 했지만 여기서 학교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온갖 자질구레한 기술적인 문제들과 구현을 담당해주었기 때문에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자동화된 기계시스템을 구현할 수가 있었습니다. 완전 자동화 구현을 위한 비선형 제어가 큰 어려움 중에 하나였는데, 이를 빠르게 선형 근사하여 제어하는 기술을 활용하여 미사일 컨트롤 연구를 하던 전문가가 실제적인 문제해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전문기술분야에서도 여러 기술전문가들로부터 전문적인 자문을 받아 세부적인 실제 문제들을 많이 해결할 수가 있었지요. 이 외에도 그 회사의 주역이 될 사람들에게 제가 박사과정 때 많이 작업을 해보았던 스트레인게이지(Strain gauge) 등을 만들어 설치하고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직접 알려주었습니다. 이전의 국내전자저울회사는 부품을 사서 조립만 했는데, 주식회사 CAS는 다양한 저울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어서 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높이 3미터 길이 5미터가 넘는 세계 최초의 완전 자동화된 CNC형 환상압연기를 제작하였고, 개발된 기계는 계약에 따라 참여업체 중 하나인 한일단조에 양도되어 10년 간 생산에 활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이 성공을 바탕으로 이후에 다른 기계를 만드는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몇 년 후 유사한 전략적인 사고와 연구를 통해 CNC형 Hydroforming Press도 개발했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20년이 지나서야 자동차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3S (System, Science, Strategy)가 기계공학의 가장 큰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제가 늘 강연에서 들곤 하는 ‘알바트로스’ 예시가 있습니다. 이 새는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날갯짓 없이 활강하다가,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재빨리 바람 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마치 연처럼 하늘 높이 솟구칩니다. 그리고 높이가 확보되면 비행방향으로 몸을 돌이켜서 활강하면서 비행을 계속합니다. 이러한 과학적이면서 전략적인 사고를 통해 3200km를 날개를 거의 젖지 않고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말하는 Strategy는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AI의 알고리즘은 컴퓨터공학에서, 회로는 전자에서 한다고 하면 기계가 설 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냥 구현만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입지가 좁아질 뿐이지요.
전략적 사고 외에도 과학적인 소양과 시스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고 이것을 리드하지 못 하면 기계가 설 땅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리드하는 한 기계공학은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노 3D프린팅 연구를 할 당시, Quantum Dot에서 나오는 빛의 위치를 3D 프린팅에 필요한 구동기의 레퍼런스로 제안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기계공학자만 할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는 모두 Scientific Thinking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니, 시스템적인 사고와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기계공학과의 경쟁력이라고 봅니다.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모든 위기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 이후 경쟁력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위기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올해 코로나19의 위기가 한국의 의료시스템 경쟁력을 오히려 세계적으로 알린 것을 생각해봅시다.

6. 기계공학과 1호 박사로써 뉴스레터를 읽는 모든 동문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저는 평생 창의적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고, 아직도 창의성이나 혁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기계분야에서 일하는 후진들은 모든 출발의 베이스를 창의적 사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영부영하면 다른 분야에 우리의 플레이그라운드를 다 빼앗깁니다. 앞으로 AI-기반의 사회로 변환하면서 많은 직업, 제품 그리고 서비스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현재 졸업생과 재학생이 어떤 분야에 자신이 몸담고 있더라도 5-10년 후에 그 직업이 남아있을지는 쉽게 장담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리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각 분야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분야와 연관하여 앞으로 어떤 것이 계속 발전할 것인지 미래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AI시대를 맞아서,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고 융합연구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계공학 분야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전략적 사고입니다. 시스템을 구축해야하는 기계분야에서 더 유연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자기 분야의 20년 뒤의 일을 그려보는 것을 Futuring이라고 하는데, 창의성 기법 중 하나입니다. ㈜지멘스와의 교류를 통해 배운 것인데, Futuring만으로는 부족하고, 5년 뒤를 구축하기 위해 20년 뒤의 미래에서 15년을 되돌아오며 생각하는 Retropolation (interpolation에서 의미를 생각해보실 수 있습니다.)까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는 미래를 염두에 두고 만들지만 실제로는 특정 기간으로 돌아와 실행 가능한 일을 구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Futuring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고 다시 가까운 미래의 시점으로 되돌아와서도(Retropolation)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후진들은 과학적 사고는 기본이고, 창의적 사고를 통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기계과에서 이런 교집합(intersection)이 생기는 장(場)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는 시스템을 다루기 때문에, 시스템적인 사고와 전략적 사고를 결합하여 앞으로 재학생, 졸업생, 동문이 경쟁력이 있도록 교육시켜야 하고 경쟁력 있는 연구도 수행해야 합니다. 논문실적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Creative Contribution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논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흐름에 부딪히며 열심히 하기만 하는 구시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다 같이 Creative Contribution의 비전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기계공학분야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흔쾌히 첫번째 인터뷰에 응해주신 양동열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 인터뷰 진행: 기계공학과 유승화 교수, 전성윤 교수
* 편집: 김슬기